장미 가득한 5월.
모두가 느껴봤고 느꼈고 느끼는 행복한 날.
시간과 공간이 제한 없이 퇴근 후 한 집에서 만난다는 것도 너무 행복했다.
통금시간이 있어서 허둥지둥 집에 데려다 주기 바빴던 신랑이
이젠 내 보호자가 되어서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더 즐겁다.
실은 지병이 있어 걱정했는데 만난 지 3개월 만에 몸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.
진단명은 만성신부전.
머뭇거림이 티날까봐 단호하게 헤어지자고 했다.
그런데 결혼하잔다. 3개월 동안 이 남자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이런 말을 하는 거지?
미쳤냐고! 앞으로 겪어야 할 일들이 많아 늘 불안할 테고!!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!
감추려는 생각도 해봤다. 언젠가 들통 날 거짓일 테고 떳떳하고 싶었다.
양가에선 난리가 났다.
시댁에선 다들 알만한 반응이고 우리에선 남의 남자 데리고 와서 고생 시키는 거 안된다하셨다.
해결이 안보이자 큰아주버님이 묘책을 내놓으셨다.
“네가 데리고 살 아이니 같이 병원 같아 다니면서 직접 겼어봐라”
와~ 이 얼마나 현명한 묘책이신가. 공자, 맹자, 다 필요 없다.
병원 진료일 에 한 번도 빠진 적 없었고 다녔고 엄마와 동행도 여부도 상관없었다.
그 1년 동안 나는 방황하기도 했고 안 그래도 힘들었을 남편에게 더 힘들게 했을 것이다.
그 사이에 주변에서 눈치 채도 못한 우울증까지 발견하고 친정 몰래 정신과까지 다녔으니
이 사연은 훗날 주변에선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러브스토리가 되었다.
그렇게 우린 1년 후 결혼하게 되었다.
결혼 날짜를 잡게 된 그해 설날에 시어머님께서 손을 조용히 잡으시고 한마디 하셨다.
“이제 너 아픈 거 이야기 하지 않으마. 내가 손주가 없는 것도 아닌데 둘이 잘 살면 된다.
“
“네”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. 눈물이 너무 가득이여서 참는 중이였다.
그 후 신랑의 보살핌은 더 적극적 이였고 시댁식구들의 배려심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.
코로나 시기엔 고위험 군이라 온 식구들의 걱정 덕분에 지금도 나만 걸리지 않았다.
지금도 감기가 심하거나하면 알아서 마스크에 각방 신세.
유난해라 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샌가 생겨난 우리 집만의 규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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